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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코치님!
인간은 위기를 겪다가 종종 가치 있는 통찰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삶 속에 스며든 절망과 혼돈 그리고 비극에 대해 얘기하다가도 어느 새 두 발로 우뚝 서서 이전보다 훨씬 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곤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육상 코치인 퍼시 웰스 세루티Percy Wells Cenity (1895~1975년)는 인생에서 그런 종류의 고통스런 국면을 겪은 후 일생의 과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939년에 그는 몸무게가 54킬로그램이었고, 소화기관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으며, 극심한 편두통과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다. 독한 약들 때문에 그의 내장 기관은 망가졌고, 의사는 그에게 남은 삶이 고작 2년 정도라고 말해주었다.
세루티는 그해에 멜버른의 한 도서관에서 황홀한 경험을 하면서 새롭고 종교적인 통찰을 얻게 되는데, 그로 인해 영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고, 그런 황홀경의 상태는 닷새 동안 계속되었다.'
세루티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6개월간 휴직했다. 질병 때문에 그는 운전을 할 수 없었고, 어디든 걸어서 다녀야만 했다. 어느 잠 못 이룬 아침에, 그는 말들을 데리고 나와 새벽 훈련을 하고 있던 멜버른의 콜필드 경마장을 방문했다. 당시 최고로 평가받던 우아한 말 에이잭스Ajax가 아이같은 호기심으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세루티의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세루티는 그 말이 자신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보냈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그 말에게서 자극을 받은 탓인지 갑자기 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말을 보고 느낀 대로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조금 더 빨리, 그런 다음에는 전력을 다해서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릴 때까지 달렸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막 새로 태어나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담배를 끊고 식단을 과일, 채소 그리고 뮤즐리(muesli, 곡물 가루나 견과류 등에 꿀과 우유를 넣어 만든 스위스식 요리-옮긴이)로 바꾸어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3년 동안 가볍게 데친 채소 말고는 모든 음식을 날로만 먹었다. 그는 걸었고, 달렸고, 헤엄쳤으며, 오지로 하이킹을 다녔다. 그는 노력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더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철학 책을 읽었고, 종교 책을 탐독했으며, 거의 광적인 열정으로 성서와 고대인의 지혜를 되새겼다. 그는 지식에 탐닉했고, 명상주의자와 노벨 의학상 수상자들의 책을 공부했다. 세루티는 자신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성취하여 세계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리라는 느낌을 늘 갖고 있었는데, 이제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행로를 발견한 것 같았다.
1935년에 《달리기 Running>라는 책을 발표한 아서 F. H. 뉴턴Arthur F. H. Newton은 달리기의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뉴턴은 완만한 속도로 훈련을 하다가 더 빠른 속도로 강렬하게 달리는 훈련 과정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권장했다. 달리기는 세루티의 병을 낫게 해주었고, 편두통까지 없애줬다.
그는 젊었을 때 가입한 적이 있는 멜버른 소재 멜버른 해리어스Maven Harriers 클럽을 다시 찾았다. 마흔일곱 살인 세루티는 새벽에 일어나 말들을 관찰하며 말들의 주법을 연구했다. 삐쩍 마른 백발의 세루티는 나란히 설치된 여러 개의 주로에서 말들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는 울타리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댄 채 말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말들의 동작을 흉내 내면서, 아침 안개 속에서 말들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렸다가 또 천천히 달렸다가 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기수들과 조련사들은 이 활기 넘치는 옛 동료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세루티는모든 말이 동일한 방법으로 주행하며 사람과는 그 방법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말들은 리듬과 흐름을 타며 힘을 최소한으로 사용해서 우아하게 움직이는데, 그러다 어느덧 빠른 속도에 이르렀다. 말들은 온몸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군더더기 동작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루티는 역기를 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1940년대의 달리기 이론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는 바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가 역기를 들면 바싹 마른 팔 여기저기서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지만, 어쨌든 상당히 무거운 역기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는 항상 반바지에 맨발이었고,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다녔다.
세루티는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상상할 수 없던 것까지, 모든 이동 동작을 시험했다. 이를테면 달릴 때 무릎을 높이 들어 올린다거나, 발을 끌며 달린다거나, 보폭을 다양하게 변화시킨다거나, 팔 동작을 이용해보기도 했다. 그는 가젤이나 퓨마, 표범, 원숭이 등을 관찰하러 멜버른 동물원을 찾았고, 결국은 달리기 기술에 관한 새로운 이론에 도달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최고의 주자는 말, 가젤, 표범 그리고 퓨마를 뒤섞은 형태가 될 것이다.
무용가와 배우들이 사용하는 '알렉산더 요법' (일상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세나 동작을 적절히 교정하여 통증을 줄이고 통증의 발생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둔 의료 기법옮긴이)의 창시자 프레데릭 마티아스 알렉산더 Frenterick Machias Aleccaroker도 세루티의 생각에 동의했다.
인간은 원래는 완벽했지만 세루티가 가장 경멸하는 바로 그것, 즉 문명의 이기 때문에 망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문명보다 더 심하게 인간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망가뜨린 것은 없었다. 소위 문명의 진보는 인간 본성을 거스른 거대한 역행의 과정이었다. 그는 의사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자연을 이용해 오히려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야말로 원시인들의 몸동작을 고스란히 재연하는 살아 있는 화석임을 세루티는 깨달았다. 문명이 그들을 파괴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몸짓, 걷기, 달리기 등에서 지구상의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움직이며, 발을 내려놓는 방법도 다르고, 몸통의 자세도 다른데다, 팔을 휘두르는 방법도 다르다. 내가 가르치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루티는 스승이자, 코치이자, 멘토가 되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가르쳐서 길러내고 싶었던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스토탄kwar' 이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stoic' 이라는 단어와 'sparan' 이라는 단어를 결합해 만든 조인데, 여기서 'stoic'은 '슬픔이나 기쁨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spartan'은 '단순하다', '꾸미지 않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멜버른 에서 60마일 떨어진 포트시 Porsa라는 해안가 마을에 15미터 평방의 오두막을 짓고 스토탄들을 길러내는 최초의 양성소를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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